이번 삼성전자 냉장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장애를 단순한 가전제품 고장으로 처리하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냉장고라는 물리적 기계가 처음부터 잘못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제품에 제조사가 통제하는 소프트웨어가 사후 배포됐고, 그 과정의 오류가 냉장·냉동이라는 핵심 물리 기능을 멈추게 했다. 제조물의 안전을 결정하는 요소가 철판과 압축기, 모터와 기판에서 코드와 서버, 업데이트 승인 절차까지 확장됐다는 사실이 생활현장에서 드러난 것이다.
YTN 보도에 따르면 문제는 9월 22일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테스트 과정에서 일부 고객에게 프로그램이 잘못 배포되면서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오류를 인지한 뒤 배포를 중단하고 긴급 대응팀을 가동했으며 수리 비용을 전액 무상 처리하고 식품 변질 등에 대한 보상 여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와 상세 대상 모델, 테스트용 프로그램이 실제 고객에게 배포된 정확한 경위는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바로 이 사실관계가 이번 사안을 법적으로 흥미롭게 만든다. 하드웨어의 자연적 고장보다 제조자의 사후 디지털 행위가 제품의 현실 기능을 바꾼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 제2조는 제조물을 “제조되거나 가공된 동산”으로 정의한다. 결함은 제조상·설계상·표시상의 결함 또는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자동차, 가전제품, 기계처럼 시장에 공급되는 물리적 물건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제품도 현실에서는 이 법의 적용 문제와 만날 수 있지만, 법문 자체는 소프트웨어와 원격 업데이트, 연결서비스를 독립적인 제조물 요소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제조물이 더 이상 판매 시점에 완성돼 기능이 고정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제조사가 판매 이후에도 원격으로 제품의 기능을 바꿀 수 있다면 제조자의 통제는 출고와 함께 종료됐다고 보기 어렵다. 통제권이 계속된다면 안전에 대한 책임도 그 통제의 범위와 기간을 따라가야 한다.
‘동산’은 그대로인데 제조물은 달라졌다
과거의 냉장고는 공장에서 완성된 뒤 소비자에게 인도되면 제조업자가 그 기능을 실시간으로 다시 설계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스마트가전은 다르다. 소비자는 냉장고라는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만, 제품의 작동 방식 일부는 제조사의 서버와 운영체제, 스마트홈 플랫폼, 펌웨어와 연결된 상태로 남는다. 제조사는 업데이트로 오류를 고치고 기능을 추가하며 보안 취약점을 수정할 수 있다. 반대로 잘못된 업데이트가 배포되면 정상적인 물리 장치도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때 책임법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첫째, 물리적 제품과 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어디까지 하나의 제조물로 평가할 것인가. 둘째, 정상적으로 출고된 제품에 사후 업데이트로 새로운 위험이 발생한 경우 결함 발생의 기준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셋째, 제품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플랫폼 운영자가 분리돼 있다면 누가 어떤 범위에서 책임을 부담할 것인가. 넷째, 업데이트 승인·테스트·단계적 배포·중단·롤백·로그 보존 같은 디지털 운영 절차를 제품 안전의 일부로 볼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이번 사고는 특히 ‘사후 통제’라는 기준을 부각한다. 제품의 판매가 끝난 뒤에도 제조자가 소프트웨어를 원격 배포하고 그 배포가 제품의 핵심 기능에 직접 영향을 준다면, 제조물책임을 최초 출고 시점에만 묶어 두는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벌어진다. 제조자가 원격으로 기능을 변경할 권한을 보유한다면 그 권한에 상응하는 주의와 안전관리 의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법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미 이 방향으로 법체계를 옮겼다. 2024년 채택된 새로운 EU 제조물책임지침은 ‘제품’에 소프트웨어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AI 시스템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제조자로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제조자의 통제 개념에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의 공급·승인·동의가 포함된다. 더 나아가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라도 제조자의 통제 아래 있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업그레이드나 머신러닝 알고리즘 때문에 결함이 생긴 경우 제조자가 책임에서 당연히 벗어나는 구조가 아니라고 명시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법이 보는 제조물의 시간을 ‘공장에서 나온 순간’에서 ‘제품이 실제로 작동하는 생애주기’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스마트TV의 앱, 자동차의 OTA 업데이트, 냉장고의 온도 제어 서비스, 의료기기의 소프트웨어처럼 물리적 제품의 안전과 디지털 기능이 분리될 수 없는 경우에는 제품의 외형보다 기능을 누가 통제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방향이다.
우리 법에서도 이번 사건 하나만으로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전혀 적용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냉장고라는 물리적 동산은 명백한 제조물이고, 제품 전체의 안전성이 결여됐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실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입법적 공백이 더 분명해진다. 소프트웨어 그 자체의 법적 위치, 사후 원격배포로 새롭게 발생한 결함, 제조자 통제의 지속기간, 소프트웨어 제공자가 별도 사업자인 경우의 책임 분배를 법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과거의 개념에 계속 끼워 맞추는 방식만으로는 예측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도 제조물이다’라는 한 문장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격 업데이트가 물리적 기능을 변경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배포 전 검증, 단계적 배포, 이상 징후 감지, 즉시 중단, 안전한 이전 버전으로의 롤백, 장애 로그의 보존과 소비자 통지까지 제품 안전관리의 구성요소로 볼 필요가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수리비뿐 아니라 식품 변질, 대체 제품 이용비용 등 소프트웨어 오류가 현실에 만들어 낸 확대손해를 어떤 기준으로 처리할지도 명확해져야 한다.
AI가 들어오면 ‘결함’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인공지능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번 냉장고 사고의 현재까지 알려진 직접 원인은 자율적 AI 판단이 아니라 테스트용 소프트웨어의 잘못된 배포다. 따라서 이 사건을 AI의 자율행위 문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물리적 제품의 상태가 코드의 실행 결과에 의해 바뀌고 그 코드가 제조자 통제 아래 원격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구조는, 앞으로 AI가 제품의 의사결정 기능에 들어갈 때 책임귀속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를 미리 보여준다.
오늘은 사람이 승인하거나 배포한 프로그램이 냉장고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앞으로 스마트홈·자동차·로봇·의료기기에서 AI가 센서 정보를 해석하고 상황에 따라 설정과 작동을 스스로 조정한다면 사고의 원인을 한 줄의 코드나 한 번의 명령으로 환원하기 어려워진다. 설계자, 학습데이터 제공자, 모델 공급자, 완제품 제조자, 배포·운영자, 사용자 가운데 누가 결과를 실질적으로 통제했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필자는 석사학위논문에서 AI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범위를 연구하면서 인공지능의 기능적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기존의 인간 행위자 중심 책임체계만으로는 행위효과와 손해를 정확히 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를 다뤘다. 당시의 논점은 고도화된 AI를 전제로 한 법리적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스마트가전 사고는 디지털 시스템의 작동이 현실의 물리적 손해로 전환되는 연결고리가 이미 일상제품 안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AI에 곧바로 사람과 같은 법적 책임을 부여하자는 결론으로 뛰어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순서는 반대다. 먼저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기능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각 주체의 통제권과 개입 가능성, 로그와 설명가능성, 보험과 보상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이나 법인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 통제에 상응하는 책임을 귀속하고, 자율성이 높아져 기존 귀속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발생할 때 별도의 책임단위와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고의 평가는 기업 비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빨리 복구했는가와 소비자에게 어느 범위까지 보상하는가는 당장의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한 기업의 사후조치보다 더 앞을 봐야 한다. 동일한 구조의 사고가 자동차·도어록·보일러·로봇·의료기기에서 발생했을 때도 현재의 법적 기준으로 결함, 인과관계, 책임주체와 손해범위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평가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스마트 제품의 안전성을 하드웨어 고장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업데이트 실패율, 배포 전 검증체계, 단계적 배포 여부, 긴급 롤백 가능시간, 장애 탐지시간, 피해 소비자 통지시간, 로그 보존기간과 실제 보상 처리기간이 새로운 안전지표가 돼야 한다. 제조사의 디지털 통제권이 커질수록 이러한 지표를 공개하고 검증할 필요성도 커진다.
냉장고는 여전히 동산이다. 그러나 오늘의 냉장고를 움직이는 제조물의 실질은 동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리적 장치와 소프트웨어, 서버와 원격 업데이트가 하나의 기능적 시스템을 이루고, 앞으로 그 안에 AI의 판단까지 결합된다. 법도 이제 ‘무엇을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누가 계속 통제하고 변경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제조자가 제품을 판매한 뒤에도 기능을 바꿀 권한을 유지한다면 책임 역시 판매 시점에서 멈출 수 없다. 이번 냉장고 사고가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이번 삼성전자 냉장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장애를 단순한 가전제품 고장으로 처리하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냉장고라는 물리적 기계가 처음부터 잘못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제품에 제조사가 통제하는 소프트웨어가 사후 배포됐고, 그 과정의 오류가 냉장·냉동이라는 핵심 물리 기능을 멈추게 했다. 제조물의 안전을 결정하는 요소가 철판과 압축기, 모터와 기판에서 코드와 서버, 업데이트 승인 절차까지 확장됐다는 사실이 생활현장에서 드러난 것이다.
YTN 보도에 따르면 문제는 9월 22일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테스트 과정에서 일부 고객에게 프로그램이 잘못 배포되면서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오류를 인지한 뒤 배포를 중단하고 긴급 대응팀을 가동했으며 수리 비용을 전액 무상 처리하고 식품 변질 등에 대한 보상 여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와 상세 대상 모델, 테스트용 프로그램이 실제 고객에게 배포된 정확한 경위는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바로 이 사실관계가 이번 사안을 법적으로 흥미롭게 만든다. 하드웨어의 자연적 고장보다 제조자의 사후 디지털 행위가 제품의 현실 기능을 바꾼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 제2조는 제조물을 “제조되거나 가공된 동산”으로 정의한다. 결함은 제조상·설계상·표시상의 결함 또는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자동차, 가전제품, 기계처럼 시장에 공급되는 물리적 물건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제품도 현실에서는 이 법의 적용 문제와 만날 수 있지만, 법문 자체는 소프트웨어와 원격 업데이트, 연결서비스를 독립적인 제조물 요소로 명시하고 있지 않다.
‘동산’은 그대로인데 제조물은 달라졌다
과거의 냉장고는 공장에서 완성된 뒤 소비자에게 인도되면 제조업자가 그 기능을 실시간으로 다시 설계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스마트가전은 다르다. 소비자는 냉장고라는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만, 제품의 작동 방식 일부는 제조사의 서버와 운영체제, 스마트홈 플랫폼, 펌웨어와 연결된 상태로 남는다. 제조사는 업데이트로 오류를 고치고 기능을 추가하며 보안 취약점을 수정할 수 있다. 반대로 잘못된 업데이트가 배포되면 정상적인 물리 장치도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때 책임법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첫째, 물리적 제품과 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어디까지 하나의 제조물로 평가할 것인가. 둘째, 정상적으로 출고된 제품에 사후 업데이트로 새로운 위험이 발생한 경우 결함 발생의 기준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셋째, 제품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플랫폼 운영자가 분리돼 있다면 누가 어떤 범위에서 책임을 부담할 것인가. 넷째, 업데이트 승인·테스트·단계적 배포·중단·롤백·로그 보존 같은 디지털 운영 절차를 제품 안전의 일부로 볼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이번 사고는 특히 ‘사후 통제’라는 기준을 부각한다. 제품의 판매가 끝난 뒤에도 제조자가 소프트웨어를 원격 배포하고 그 배포가 제품의 핵심 기능에 직접 영향을 준다면, 제조물책임을 최초 출고 시점에만 묶어 두는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벌어진다. 제조자가 원격으로 기능을 변경할 권한을 보유한다면 그 권한에 상응하는 주의와 안전관리 의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법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미 이 방향으로 법체계를 옮겼다. 2024년 채택된 새로운 EU 제조물책임지침은 ‘제품’에 소프트웨어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AI 시스템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제조자로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제조자의 통제 개념에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의 공급·승인·동의가 포함된다. 더 나아가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라도 제조자의 통제 아래 있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업그레이드나 머신러닝 알고리즘 때문에 결함이 생긴 경우 제조자가 책임에서 당연히 벗어나는 구조가 아니라고 명시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법이 보는 제조물의 시간을 ‘공장에서 나온 순간’에서 ‘제품이 실제로 작동하는 생애주기’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스마트TV의 앱, 자동차의 OTA 업데이트, 냉장고의 온도 제어 서비스, 의료기기의 소프트웨어처럼 물리적 제품의 안전과 디지털 기능이 분리될 수 없는 경우에는 제품의 외형보다 기능을 누가 통제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방향이다.
우리 법에서도 이번 사건 하나만으로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전혀 적용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냉장고라는 물리적 동산은 명백한 제조물이고, 제품 전체의 안전성이 결여됐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실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입법적 공백이 더 분명해진다. 소프트웨어 그 자체의 법적 위치, 사후 원격배포로 새롭게 발생한 결함, 제조자 통제의 지속기간, 소프트웨어 제공자가 별도 사업자인 경우의 책임 분배를 법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과거의 개념에 계속 끼워 맞추는 방식만으로는 예측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정책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도 제조물이다’라는 한 문장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격 업데이트가 물리적 기능을 변경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배포 전 검증, 단계적 배포, 이상 징후 감지, 즉시 중단, 안전한 이전 버전으로의 롤백, 장애 로그의 보존과 소비자 통지까지 제품 안전관리의 구성요소로 볼 필요가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수리비뿐 아니라 식품 변질, 대체 제품 이용비용 등 소프트웨어 오류가 현실에 만들어 낸 확대손해를 어떤 기준으로 처리할지도 명확해져야 한다.
AI가 들어오면 ‘결함’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인공지능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번 냉장고 사고의 현재까지 알려진 직접 원인은 자율적 AI 판단이 아니라 테스트용 소프트웨어의 잘못된 배포다. 따라서 이 사건을 AI의 자율행위 문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물리적 제품의 상태가 코드의 실행 결과에 의해 바뀌고 그 코드가 제조자 통제 아래 원격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구조는, 앞으로 AI가 제품의 의사결정 기능에 들어갈 때 책임귀속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를 미리 보여준다.
오늘은 사람이 승인하거나 배포한 프로그램이 냉장고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앞으로 스마트홈·자동차·로봇·의료기기에서 AI가 센서 정보를 해석하고 상황에 따라 설정과 작동을 스스로 조정한다면 사고의 원인을 한 줄의 코드나 한 번의 명령으로 환원하기 어려워진다. 설계자, 학습데이터 제공자, 모델 공급자, 완제품 제조자, 배포·운영자, 사용자 가운데 누가 결과를 실질적으로 통제했는지를 다시 묻게 된다.
필자는 석사학위논문에서 AI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범위를 연구하면서 인공지능의 기능적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기존의 인간 행위자 중심 책임체계만으로는 행위효과와 손해를 정확히 귀속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문제를 다뤘다. 당시의 논점은 고도화된 AI를 전제로 한 법리적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스마트가전 사고는 디지털 시스템의 작동이 현실의 물리적 손해로 전환되는 연결고리가 이미 일상제품 안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AI에 곧바로 사람과 같은 법적 책임을 부여하자는 결론으로 뛰어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순서는 반대다. 먼저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기능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각 주체의 통제권과 개입 가능성, 로그와 설명가능성, 보험과 보상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이나 법인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 통제에 상응하는 책임을 귀속하고, 자율성이 높아져 기존 귀속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발생할 때 별도의 책임단위와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고의 평가는 기업 비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빨리 복구했는가와 소비자에게 어느 범위까지 보상하는가는 당장의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한 기업의 사후조치보다 더 앞을 봐야 한다. 동일한 구조의 사고가 자동차·도어록·보일러·로봇·의료기기에서 발생했을 때도 현재의 법적 기준으로 결함, 인과관계, 책임주체와 손해범위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평가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스마트 제품의 안전성을 하드웨어 고장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업데이트 실패율, 배포 전 검증체계, 단계적 배포 여부, 긴급 롤백 가능시간, 장애 탐지시간, 피해 소비자 통지시간, 로그 보존기간과 실제 보상 처리기간이 새로운 안전지표가 돼야 한다. 제조사의 디지털 통제권이 커질수록 이러한 지표를 공개하고 검증할 필요성도 커진다.
냉장고는 여전히 동산이다. 그러나 오늘의 냉장고를 움직이는 제조물의 실질은 동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리적 장치와 소프트웨어, 서버와 원격 업데이트가 하나의 기능적 시스템을 이루고, 앞으로 그 안에 AI의 판단까지 결합된다. 법도 이제 ‘무엇을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누가 계속 통제하고 변경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제조자가 제품을 판매한 뒤에도 기능을 바꿀 권한을 유지한다면 책임 역시 판매 시점에서 멈출 수 없다. 이번 냉장고 사고가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참고자료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