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전혀 다른 두 편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리센느 막내 제나가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픽고의 웹드라마 「책임지는 남자 특」이다. 장르도 다르고 출연자도 다르고, 한쪽은 음악이고 다른 한쪽은 직장인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다. 그런데 두 영상을 보고 나면 지금의 미디어와 광고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묘하게 같은 방향이 보인다. 광고가 콘텐츠를 멈추고 들어오는 시대에서, 콘텐츠의 사람과 관계와 생활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나의 영상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10대 아이돌 멤버가 오래된 트로트부터 비교적 최근 곡까지 이어 부르는데, 처음에는 ‘이 나이에 이 노래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노래가 이어질수록 어린 나이와 장르 사이의 간격 자체가 재미가 된다. 완전히 농익은 트로트 가수의 내공과는 다른 결이지만, 오히려 제나가 가진 맑고 단단한 음색과 아직 어린 사람 특유의 직선적인 에너지가 오래된 노래를 새롭게 들리게 한다. 9월 18일 공개된 이 영상은 며칠 만에 수백만 조회를 기록했고, 장윤정이 반응을 보일 정도로 세대의 경계를 넘어 화제가 됐다.
무대 뒤쪽에서 다른 리센느 멤버들이 코러스와 퍼포먼스로 받쳐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누군가 혼자 노래를 잘하는 장면이라기보다, 멤버들이 한 사람의 무대를 함께 만들어 주는 작은 공연처럼 보인다. 거기에 추석이라는 계절감이 얹힌다. 명절 인사를 하고, 떡을 먹고, 웃고, 잠깐 장난을 치는 장면이 끼어든다. 이런 장면은 대형 방송 프로그램에서 너무 정교하게 연출하면 오히려 광고 냄새가 강해질 수 있지만, 유튜브에서는 ‘멤버들이 추석 콘텐츠를 찍다가 자연스럽게 먹고 노는 장면’처럼 받아들여진다. 찹쌀떡 상품이 소개되더라도 상품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제나와 멤버들의 관계와 명절의 분위기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과거의 방송에서는 콘텐츠와 광고의 경계가 명확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다가 광고로 전환되면 시청자는 지금부터 광고가 시작됐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PPL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강조되면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장면으로 비판받기 쉬웠다. 반면 지금의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상품이 그날의 이야기와 상황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품처럼 들어간다. 시청자는 상품을 보기 위해 영상을 누른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보기 위해 들어왔는데, 그 관계 속에서 상품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서 광고의 단위가 바뀐다. 예전에는 ‘프로그램 앞 15초’, ‘중간 광고 몇 회’, ‘시청률 몇 퍼센트’가 중요한 단위였다면, 지금은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 속에서 브랜드가 등장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추석 콘텐츠에서 떡이 등장하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제품을 갑자기 들고 설명하는 것은 같은 노출이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광고가 잘 보이는가보다 콘텐츠의 맥락과 잘 맞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픽고의 「책임지는 남자 특」은 이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준다. 픽고의 강점은 거대한 사건을 만들기보다 우리가 회사와 연애와 인간관계에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작은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끌어내는 데 있다. 팀장과 팀원 사이의 긴장, 일할 때의 말투,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업무와 사적인 감정을 어디까지 구분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가 드라마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시청자는 ‘저런 회사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저런 팀에서 한번 일해 보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YouTube · 픽고 PICKGO
책임지는 남자 특 ↗
일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책임질 순간에는 함께 움직이는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그린 웹드라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좋은 상사’라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일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서로가 동료이자 일종의 전우가 되는 방식이다. 사적인 친분 때문에 원칙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피하지 않고, 팀원이 혼자 맞게 두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직장생활에서 이런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장면일 수 있고, 그렇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꽤 부러운 장면일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의 재미는 사건보다 관계에서 나온다.
바로 그 관계 안에 상품이 들어간다. 「책임지는 남자 특」의 공개 설명에서는 TUMI 협업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고, 도은 팀장이 사용하는 백팩이 콘텐츠의 생활 소품으로 배치된다. 가방이 갑자기 화면을 점령하며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인물이라면 이런 물건을 쓸 것 같다’는 캐릭터의 생활 속에 놓인다. 시청자가 장면 속 음료나 소품을 발견하는 경험도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상품이 몇 초 나왔느냐보다, 그 상품이 등장인물의 세계와 얼마나 자연스럽게 맞물리느냐다.
연구 결과도 이 지점을 뒷받침한다. 202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E-Business Research」에 실린 유튜브 제품배치 연구는 브랜드와 유튜버 콘텐츠의 관련성, 유튜버에 대한 신뢰, 채널 커뮤니티에 대한 호의가 브랜드 태도에 유의한 영향을 주고, 브랜드 태도가 구매의도와 강하게 연결된다고 보고했다. 2026년 발표된 준사회적 관계 연구의 메타분석에서도 시청자가 느끼는 유사성, 참여감, 신뢰성, 브랜드 신뢰가 소비자 태도와 구매의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가 더 이상 단순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신뢰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미디어 시장을 ‘TV가 죽고 유튜브가 이긴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너무 단순하다.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는 미디어의 역할이 잘게 분화되는 것이다. 국가적 사건과 대형 스포츠, 생방송, 전국적인 이슈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데에는 여전히 대형 방송사가 강하다. 하지만 직장인의 작은 애환, 특정 세대의 연애 감정, 한 아이돌의 말투와 고향 이야기, 몇 명이 모여 만드는 작은 공연처럼 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는 유튜브와 작은 제작사가 훨씬 깊게 파고들 수 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오히려 반복해서 같은 얼굴과 같은 공간을 보여 줄 수 있고, 그 반복이 관계와 친숙함을 만든다.
픽고 같은 채널을 계속 보다 보면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를 이미 알고 다음 영상을 보게 된다. 리센느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원이와 제나, 미나미와 다른 멤버들이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떻게 장난을 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영상에 진입하는 데 설명이 거의 필요 없다. 이것은 과거 방송사가 장기간 프로그램 편성을 통해 만들던 익숙함을 작은 채널이 더 짧고 촘촘한 주기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채널은 단순한 영상 보관함이 아니라 작은 세계가 되고, 시청자는 그 세계의 반복 방문자가 된다.
광고비의 흐름도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25 방송통신광고비조사」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광고비는 2024년 10조 1,011억 원에서 2026년 11조 4,945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방송 광고비는 같은 기간 3조 2,191억 원에서 2조 5,583억 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광고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의 흐름은 더 분명하다. 미국 IAB는 크리에이터 광고 지출이 2024년 295억 달러에서 2025년 371억 달러, 2026년 약 439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AB는 광고주들이 크리에이터를 더 이상 소셜미디어 캠페인의 부수적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독립적인 미디어 채널로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브랜드가 사는 것이 단순한 조회수만이 아니라 특정 크리에이터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관계와 팬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된 신뢰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변화에는 분명 위험도 있다. 광고가 콘텐츠와 너무 자연스럽게 섞이면 시청자는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부터가 상업적 메시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협찬과 광고 여부를 투명하게 표시하는 원칙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는 뜻이 아니라, 광고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콘텐츠의 흐름과 인물의 세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브랜디드 콘텐츠의 경쟁력은 은폐가 아니라 투명성과 맥락의 결합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추석을 앞두고 제나가 오래된 트로트를 부르고, 뒤에서 멤버들이 함께 코러스를 넣고, 중간에 떡을 먹으며 웃는 장면이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이것은 거창한 무대가 아니지만 가족이 모이는 계절의 정서와 아이돌의 일상, 세대가 다른 음악, 상품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온다. 픽고의 직장 드라마 역시 거대한 세트가 없어도 직장인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관계를 정확하게 건드리고, 그 세계 안에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콘텐츠와 광고가 별개의 산업처럼 움직이던 구조가 하나의 생활 장면 안에서 합쳐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디어 시장이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무대를 가진 곳만이 강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을 반복해서 불러 모으고 그들이 왜 다시 찾아오는지를 아는 미디어가 강해지고 있다. 광고 역시 가장 크게 외치는 방식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에 놓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나의 작은 추석 무대와 픽고의 작은 사무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것은 결국 같은 변화다. 미디어의 힘을 재는 단위가 ‘얼마나 크게 보여 주는가’에서 ‘얼마나 깊은 관계와 맥락을 만들어 내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광고는 더 이상 콘텐츠 사이에 끼어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 그러나 광고라는 사실은 숨기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참고자료
조회수·구독자 수 등 플랫폼 지표는 변동될 수 있으므로 기사에 명시된 기준 시점과 함께 확인했습니다.
- YouTube, 「[추석 특집] 제나의 트로트 메들리」,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2026.09.18.
- 미디어파인, 「리센느 제나, 트로트 메들리 650만 조회 수-장윤정 '덩실덩실'」, 2026.09.21.
- YouTube, 「책임지는 남자 특」, 픽고 PICKGO, 2026.09.12.
- YouTube Rank, 픽고 PICKGO 「책임지는 남자 특」 공개 설명 및 TUMI 협업 정보.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2025 방송통신광고비조사」 매체유형별 광고비 통계.
- IAB, 2025 Creator Economy Ad Spend & Strategy Report.
- International Journal of E-Business Research, 「Ways to Implement Effective Product Placement on YouTube」, 2023.
- Journal of Service Theory and Practice, 「How parasocial relationships drive purchase intentions: a meta-analysis」, 2026.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전혀 다른 두 편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리센느 막내 제나가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픽고의 웹드라마 「책임지는 남자 특」이다. 장르도 다르고 출연자도 다르고, 한쪽은 음악이고 다른 한쪽은 직장인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다. 그런데 두 영상을 보고 나면 지금의 미디어와 광고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묘하게 같은 방향이 보인다. 광고가 콘텐츠를 멈추고 들어오는 시대에서, 콘텐츠의 사람과 관계와 생활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나의 영상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10대 아이돌 멤버가 오래된 트로트부터 비교적 최근 곡까지 이어 부르는데, 처음에는 ‘이 나이에 이 노래를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노래가 이어질수록 어린 나이와 장르 사이의 간격 자체가 재미가 된다. 완전히 농익은 트로트 가수의 내공과는 다른 결이지만, 오히려 제나가 가진 맑고 단단한 음색과 아직 어린 사람 특유의 직선적인 에너지가 오래된 노래를 새롭게 들리게 한다. 9월 18일 공개된 이 영상은 며칠 만에 수백만 조회를 기록했고, 장윤정이 반응을 보일 정도로 세대의 경계를 넘어 화제가 됐다.
무대 뒤쪽에서 다른 리센느 멤버들이 코러스와 퍼포먼스로 받쳐 주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누군가 혼자 노래를 잘하는 장면이라기보다, 멤버들이 한 사람의 무대를 함께 만들어 주는 작은 공연처럼 보인다. 거기에 추석이라는 계절감이 얹힌다. 명절 인사를 하고, 떡을 먹고, 웃고, 잠깐 장난을 치는 장면이 끼어든다. 이런 장면은 대형 방송 프로그램에서 너무 정교하게 연출하면 오히려 광고 냄새가 강해질 수 있지만, 유튜브에서는 ‘멤버들이 추석 콘텐츠를 찍다가 자연스럽게 먹고 노는 장면’처럼 받아들여진다. 찹쌀떡 상품이 소개되더라도 상품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제나와 멤버들의 관계와 명절의 분위기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과거의 방송에서는 콘텐츠와 광고의 경계가 명확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다가 광고로 전환되면 시청자는 지금부터 광고가 시작됐다는 것을 즉시 알았다. PPL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강조되면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장면으로 비판받기 쉬웠다. 반면 지금의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상품이 그날의 이야기와 상황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품처럼 들어간다. 시청자는 상품을 보기 위해 영상을 누른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보기 위해 들어왔는데, 그 관계 속에서 상품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서 광고의 단위가 바뀐다. 예전에는 ‘프로그램 앞 15초’, ‘중간 광고 몇 회’, ‘시청률 몇 퍼센트’가 중요한 단위였다면, 지금은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 속에서 브랜드가 등장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추석 콘텐츠에서 떡이 등장하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제품을 갑자기 들고 설명하는 것은 같은 노출이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광고가 잘 보이는가보다 콘텐츠의 맥락과 잘 맞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픽고의 「책임지는 남자 특」은 이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준다. 픽고의 강점은 거대한 사건을 만들기보다 우리가 회사와 연애와 인간관계에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작은 장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끌어내는 데 있다. 팀장과 팀원 사이의 긴장, 일할 때의 말투,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업무와 사적인 감정을 어디까지 구분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가 드라마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시청자는 ‘저런 회사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저런 팀에서 한번 일해 보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일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책임질 순간에는 함께 움직이는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그린 웹드라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좋은 상사’라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일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서로가 동료이자 일종의 전우가 되는 방식이다. 사적인 친분 때문에 원칙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피하지 않고, 팀원이 혼자 맞게 두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직장생활에서 이런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장면일 수 있고, 그렇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꽤 부러운 장면일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의 재미는 사건보다 관계에서 나온다.
바로 그 관계 안에 상품이 들어간다. 「책임지는 남자 특」의 공개 설명에서는 TUMI 협업이 명확하게 제시돼 있고, 도은 팀장이 사용하는 백팩이 콘텐츠의 생활 소품으로 배치된다. 가방이 갑자기 화면을 점령하며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인물이라면 이런 물건을 쓸 것 같다’는 캐릭터의 생활 속에 놓인다. 시청자가 장면 속 음료나 소품을 발견하는 경험도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상품이 몇 초 나왔느냐보다, 그 상품이 등장인물의 세계와 얼마나 자연스럽게 맞물리느냐다.
연구 결과도 이 지점을 뒷받침한다. 202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E-Business Research」에 실린 유튜브 제품배치 연구는 브랜드와 유튜버 콘텐츠의 관련성, 유튜버에 대한 신뢰, 채널 커뮤니티에 대한 호의가 브랜드 태도에 유의한 영향을 주고, 브랜드 태도가 구매의도와 강하게 연결된다고 보고했다. 2026년 발표된 준사회적 관계 연구의 메타분석에서도 시청자가 느끼는 유사성, 참여감, 신뢰성, 브랜드 신뢰가 소비자 태도와 구매의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가 더 이상 단순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신뢰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미디어 시장을 ‘TV가 죽고 유튜브가 이긴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너무 단순하다.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는 미디어의 역할이 잘게 분화되는 것이다. 국가적 사건과 대형 스포츠, 생방송, 전국적인 이슈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데에는 여전히 대형 방송사가 강하다. 하지만 직장인의 작은 애환, 특정 세대의 연애 감정, 한 아이돌의 말투와 고향 이야기, 몇 명이 모여 만드는 작은 공연처럼 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는 유튜브와 작은 제작사가 훨씬 깊게 파고들 수 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오히려 반복해서 같은 얼굴과 같은 공간을 보여 줄 수 있고, 그 반복이 관계와 친숙함을 만든다.
픽고 같은 채널을 계속 보다 보면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를 이미 알고 다음 영상을 보게 된다. 리센느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원이와 제나, 미나미와 다른 멤버들이 어떤 말투를 쓰고 어떻게 장난을 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영상에 진입하는 데 설명이 거의 필요 없다. 이것은 과거 방송사가 장기간 프로그램 편성을 통해 만들던 익숙함을 작은 채널이 더 짧고 촘촘한 주기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채널은 단순한 영상 보관함이 아니라 작은 세계가 되고, 시청자는 그 세계의 반복 방문자가 된다.
광고비의 흐름도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25 방송통신광고비조사」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광고비는 2024년 10조 1,011억 원에서 2026년 11조 4,945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방송 광고비는 같은 기간 3조 2,191억 원에서 2조 5,583억 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광고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의 흐름은 더 분명하다. 미국 IAB는 크리에이터 광고 지출이 2024년 295억 달러에서 2025년 371억 달러, 2026년 약 439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AB는 광고주들이 크리에이터를 더 이상 소셜미디어 캠페인의 부수적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독립적인 미디어 채널로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브랜드가 사는 것이 단순한 조회수만이 아니라 특정 크리에이터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관계와 팬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된 신뢰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변화에는 분명 위험도 있다. 광고가 콘텐츠와 너무 자연스럽게 섞이면 시청자는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부터가 상업적 메시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협찬과 광고 여부를 투명하게 표시하는 원칙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 광고’가 좋은 광고라는 뜻이 아니라, 광고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콘텐츠의 흐름과 인물의 세계를 해치지 않는 방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브랜디드 콘텐츠의 경쟁력은 은폐가 아니라 투명성과 맥락의 결합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추석을 앞두고 제나가 오래된 트로트를 부르고, 뒤에서 멤버들이 함께 코러스를 넣고, 중간에 떡을 먹으며 웃는 장면이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이것은 거창한 무대가 아니지만 가족이 모이는 계절의 정서와 아이돌의 일상, 세대가 다른 음악, 상품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온다. 픽고의 직장 드라마 역시 거대한 세트가 없어도 직장인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관계를 정확하게 건드리고, 그 세계 안에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콘텐츠와 광고가 별개의 산업처럼 움직이던 구조가 하나의 생활 장면 안에서 합쳐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디어 시장이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무대를 가진 곳만이 강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을 반복해서 불러 모으고 그들이 왜 다시 찾아오는지를 아는 미디어가 강해지고 있다. 광고 역시 가장 크게 외치는 방식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에 놓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나의 작은 추석 무대와 픽고의 작은 사무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것은 결국 같은 변화다. 미디어의 힘을 재는 단위가 ‘얼마나 크게 보여 주는가’에서 ‘얼마나 깊은 관계와 맥락을 만들어 내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광고는 더 이상 콘텐츠 사이에 끼어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 그러나 광고라는 사실은 숨기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참고자료
조회수·구독자 수 등 플랫폼 지표는 변동될 수 있으므로 기사에 명시된 기준 시점과 함께 확인했습니다.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