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가장 답답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문제들이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치에서는 상대 진영을 정책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고, 교육에서는 적성과 가능성보다 어느 대학과 어느 직업의 서열에 올라갈 것인가가 앞선다. 조직과 공동체에서는 같은 행위도 내 편이 하면 이해하고 상대편이 하면 공격하는 이중 기준이 쉽게 나타난다.

이 현상들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정치 양극화와 입시 경쟁, 직업 선택, 종교와 조직문화는 각각 다른 역사와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영역의 밑바닥에서 반복되는 공통된 사회적 문법은 분명히 보인다. 이기지 못하면 밀려난다는 승자독식, 위로 올라가야 안전하다는 서열, 그리고 공통의 기준보다 우리 편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는 내 편 우선의 문법이다.

해방과 미완의 청산

이 문법의 기원을 단순히 해방 직후의 역사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국가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한반도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완전한 자주국가 체제가 출범한 것은 아니었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했고 남한에는 미군정이 실시됐다.

문제는 새로운 국가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식민지기의 제도와 인력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군정은 행정 공백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조직과 경험자를 상당 부분 활용했다. 1947년 미국 국무부 문서는 당시 남한 경찰 조직의 장교 가운데 약 80%가 일제 경찰 체계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고 기록하면서, 이 때문에 경찰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사실은 해방 이후 경찰 전체를 하나의 성격으로 단정할 근거는 아니지만, 식민지기의 인적 연속성이 상당했다는 점은 보여준다.

사법 영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 해방 후 판검사 임용을 연구한 법학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법원 서기 경력자와 일본 제국의 사법시험·법조 자격 체계 안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해방 뒤 판검사로 충원됐고, 그 가운데 일부가 이후 법원과 검찰의 고위직에 진출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을 일률적으로 친일로 규정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의 사법제도가 식민지기의 제도와 인적 구조로부터 단숨에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역사적 연속성을 보는 것이다.

친일 청산을 위해 출범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좌절은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민특위는 1948년 설치돼 활동했지만 친일 경찰과 정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1949년 6월 6일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외신 기자회견에서 특경대 해산을 자신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반민특위의 활동은 급격히 약화됐고 결국 사실상 무력화됐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을 다룬 KBS 히스토리 영상 썸네일 YouTube · KBS 히스토리 역덕이슈오늘 l 14 반민특위습격사건, 친일청산이 좌절되다 ↗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 습격과 친일청산 좌절의 과정을 정리한 KBS 역사 영상입니다.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과거와의 단절은 충분하지 않았다. 국가를 새로 세우면서도 기존의 행정기술과 경찰조직, 법체계와 인력을 상당 부분 이어받아야 했고, 냉전과 분단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친일 청산의 문제는 곧 반공의 문제와 겹쳤고, 정치적 반대자를 이념의 언어로 규정하는 관행도 강해졌다. 오늘의 모든 정치적 갈등을 이 시기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대립을 생존과 충성의 문제로 바꾸는 경험이 한국 현대사에 깊이 각인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권위주의의 반복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진 뒤 한국 사회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박정희 정부 시기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산업화가 진행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제약되고 장기집권 체제가 강화됐으며, 1972년 유신체제는 대통령 권한을 극단적으로 확대했다. 경제적 성취와 권위주의적 통치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워버리는 관계가 아니다. 두 사실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1979년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도 민주화가 곧바로 자리 잡지 못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 지휘권을 장악했고, 1980년 민주화 요구는 다시 강하게 억압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이르러서야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제도적 민주화의 큰 전환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제도가 민주화됐다고 해서 사람들의 정치 습관과 권위에 대한 태도,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동시에 민주화되는가. 민주주의는 헌법과 선거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패배를 인정하는 법, 반대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법을 사회가 함께 익혀야 한다.

정서적 양극화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를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이념 차이가 커졌다고만 설명하기 어렵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2025년 실시한 정치 양극화 인식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이념 분포에서 중도가 46.3%로 가장 컸다. 반면 양대 정당 지지자들이 상대 정당에 느끼는 비호감도는 90%를 넘었다. 정책적 거리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기보다 상대 정당과 그 지지자 자체를 싫어하는 정서적·정파적 대립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현상은 일상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1찍’과 ‘2찍’ 같은 숫자로 부르며 사람 전체를 분류하고, 반대편을 빨갱이·종북·수구·토착왜구 같은 낙인으로 묶어버린다.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느 편인지 먼저 확인한다. 사실이 내 편에 불리하면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같은 행동도 우리 편이 하면 사정이 있다고 말하면서 상대편이 하면 도덕적 결함으로 규정한다.

이 모습을 곧바로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역사적·정치학적 의미가 엄격한 개념이다. 오늘의 열성 지지자들을 일괄적으로 그런 체제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상대 진영을 공존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고, 지도자나 집단에 대한 충성이 사실과 공통의 규칙보다 앞서는 순간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이 약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는 제도가 아니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고 말하며 다시 경쟁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제도가 아니라 문화가 된다.

승자독식의 사회 문법

정치의 진영논리와 교육 경쟁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영역을 포함해 한국 사회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되는 세 가지 문법은 비교할 수 있다. 첫째는 승자독식이다. 선거에서 지면 정책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된 것처럼 느끼고, 입시에서 밀리면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뒤처졌다고 느낀다.

둘째는 서열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어떤 전문직을 가졌는지가 사람의 능력과 삶의 가치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지가 된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사람은 안전한 상위 서열을 찾는다. 그래서 좋은 직업을 갖고 싶은 개인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일 수 있지만, 모두가 몇 개의 상위 경로에 몰리면 사회 전체로는 엄청난 경쟁 비용이 발생한다.

셋째는 내 편 우선이다. 공정한 규칙을 요구하면서도 그 규칙이 우리 편에 불리하면 예외를 찾고, 상대편의 잘못에는 엄격하면서 우리 편의 잘못에는 맥락과 사정을 붙인다. 공정은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 공정이 아니다. 민주사회가 유지되려면 사람보다 기준이 먼저 서야 한다.

이 세 문법은 결국 하나의 불안을 공유한다. 내가 지면 끝난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 내 편이 권력을 잃으면 내가 위험해진다는 불안이다. 사회안전망과 이동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고 패자에게 다시 기회가 적을수록 사람들은 타협보다 승리에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양극화와 경쟁을 도덕성 부족만으로 설명하면 문제를 놓친다. 개인의 태도뿐 아니라 패배의 비용을 지나치게 크게 만드는 제도와 구조도 함께 보아야 한다.

교육과 서열 경쟁

교육 문제에서 이 모순은 더욱 선명하다. 많은 부모는 아이의 적성과 잠재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선택의 순간에는 의대, 명문대, 안정적인 전문직을 가장 안전한 길로 판단한다. 부모 개인의 욕심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의 격차와 고용 불안, 직업별 소득과 정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부모와 학생은 위험을 줄이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OECD는 한국의 교육 경쟁을 분석하면서 상위 대학 진학이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임금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강한 입시 경쟁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이름을 전공 적성과 관심보다 우선하는 현상을 ‘골든 티켓’ 문제로 설명했고, 의과대학 진학 경쟁도 별도로 언급했다. 또 한국 교육에서 경쟁의 문화가 협력의 문화를 압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있다. 한 가정이 자기 아이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을 권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가정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하면 사회 전체에서는 창의성, 다양성, 직업의 균형이 약해진다.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 집단 전체에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키운 청년들이 회사에 들어와 공동체보다 자신의 경력과 보상을 먼저 생각한다고 기성세대가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앞선 세대이고,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업이 실패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보여준 것도 지금의 사회구조다. 청년에게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전에 공동체보다 경쟁을 먼저 학습시킨 사회를 돌아봐야 한다.

창의성과 권위의 역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흥미로운 역설을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 발표한 글로벌 한류 분석에 따르면 한류는 K-pop을 넘어 문학, 영화, 관광, 소비 영역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더 이상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K-콘텐츠가 세계에서 힘을 얻은 이유를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중심에는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 기존 형식을 깨는 실험, 서로 다른 장르를 섞는 능력이 있다. 문화는 다름을 허용할수록 풍부해지고,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사람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치와 종교, 일부 조직문화에서는 반대의 장면이 반복된다. 질문하는 사람보다 충성하는 사람이 편하고, 새로운 생각보다 조직의 기존 언어를 반복하는 사람이 안전하다. 정치에서는 진영에 대한 충성이, 종교에서는 교세와 권위에 대한 복종이, 조직에서는 학벌과 직급이 사람의 판단을 대신할 때가 있다. 모든 정치조직과 종교공동체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권위가 사실과 양심보다 앞서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다.

문화에서는 세계가 인정할 만큼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정작 정치와 정신의 영역에서는 왜 아직도 상대를 편으로 나누고 권위에 기대는 모습이 반복되는가. 이 질문은 한류의 성공을 자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문화적 창의성이 사회 전체의 성숙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적 리더십의 조건

그래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를 말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강력한 한 사람이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순간 다시 권위주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는 지도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을 세우는 공적·정신적 리더십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추종자를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기편을 더 단단히 결집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편의 말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려운 문제를 선악으로 단순화해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 그대로 설명하면서도 공동체가 지켜야 할 기준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치적 지도자에게도, 종교적 지도자에게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는 데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야를 넓히고 자유로운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이나 신자를 미성숙한 추종자로 남겨두는 리더십은 오래갈수록 공동체를 약하게 만든다.

진영을 넘어선 기준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념 하나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사라질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철학과 정책은 존재해야 하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다만 논쟁의 규칙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먼저 편으로 나눈 뒤 사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먼저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틀렸을 때도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아이만 살아남는 길이 아니라 다른 아이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대학과 직업의 이름보다 한 사람이 가진 재능과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는 패배가 곧 추락이 되지만 민주사회의 패배는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회여야 한다. 서열사회에서는 위에 있는 사람이 옳지만 성숙한 사회에서는 근거가 있는 사람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진영사회에서는 내 편이 기준이 되지만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같은 기준이 내 편과 상대편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요한복음 8장 32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면, 그 자유는 내가 속한 진영이 이기는 자유가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 받아들이고, 서열과 진영이 대신하던 판단을 스스로 되찾는 자유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이제 진영보다 사실을, 서열보다 가능성을, 내 편보다 공통의 기준을 앞세워야 한다.

참고자료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