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빠르게 업무 현장으로 들어오면서 한국의 일자리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문제는 단순히 AI가 사람을 대체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고경력 인구가 정년과 은퇴를 맞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첫 직장에서 경험을 쌓던 초급 업무가 AI로 빠르게 압축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 두 흐름을 동시에 가속한다.

한국은행은 1964~1974년생 2차 베이비부머를 약 954만 명, 전체 인구의 18.6%로 추산한다. 이들은 2024년부터 11년에 걸쳐 법정 은퇴연령에 진입한다. 앞선 1955~1963년생 1차 베이비부머 약 705만 명은 이미 은퇴연령 진입을 마쳤다. 한국 사회는 수십 년 동안 산업과 조직에서 경험을 축적한 대규모 인구가 노동시장의 경계 밖으로 이동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 세대는 기술적으로도 독특한 생애를 통과했다. 종이문서와 수작업 중심의 업무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받아들였고, 다시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을 경험했으며 이제는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를 마주하고 있다. 하나의 직업 생애 안에서 업무도구와 정보환경이 여러 차례 근본적으로 바뀐 세대다.

그 과정에서 적응하기도 전에 다음 변화가 밀려오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렇다고 이들을 단순히 디지털에 뒤처진 세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부머가 이전 세대보다 교육수준과 IT 활용도가 높고 계속근로 의향도 강하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AI와 결합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여기에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AI를 자주 사용하는 것과 AI를 이용해 일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얻고, 문서를 요약하고, 이메일을 작성하고, 번역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은 빠르게 일상적인 업무능력이 되고 있다. 지금은 이를 AI 활용능력이라고 부르지만 머지않아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엑셀을 사용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업무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짜 격차는 그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다. 어떤 업무를 자동화할 것인지, 업무를 어떤 단위로 나눌 것인지, 어떤 단계는 AI에게 맡기고 어떤 단계는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지, AI가 만든 결과를 무엇으로 검증할 것인지, 오류가 발생하면 어디에서 원인을 추적할 것인지, 여러 사람과 여러 AI를 어떤 흐름으로 연결할 것인지까지 설계하는 능력이다.

AI에게 좋은 답을 받는 것과 AI를 이용해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한국은행의 2026년 생산성 연구는 이 차이를 보여준다. AI 활용은 평균 업무시간을 3.8%, 주당 약 1.5시간 줄였지만 그 시간절감이 실제 생산 증가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았다. 개별 작업은 빨라졌지만 업무흐름과 조직구조, 인력배치가 함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AI의 효과는 기술을 도입했다는 사실보다 그 기술에 맞게 일을 다시 설계했는지에 좌우된다.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경험한 사람의 가치가 다시 나타난다. 기업의 업무가 실제로 어디에서 막히는지, 매뉴얼과 현실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고객이 무엇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떤 오류가 반복되는지, 어느 업무는 자동화해도 되지만 어느 업무는 사람의 판단을 남겨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은 짧은 AI 교육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암묵지다. 문서에 적혀 있지 않지만 조직과 현장의 경험 속에 축적된 판단이다. AI 시대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이 암묵지를 퇴직과 함께 사라지게 하지 않고 업무절차, 판단기준, 사례, 데이터와 연결된 조직지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반대편에는 청년이 있다. 청년은 새로운 도구에 빠르게 적응하고 AI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러나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기 쉬운 업무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 신입사원이 맡으며 조직을 배우던 초급 지식업무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회의자료를 구성하고, 기본적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단순한 허드렛일만은 아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신입은 산업과 회사, 고객과 규칙, 선배의 판단방식을 배웠다. 초급업무는 생산의 한 단계이면서 동시에 숙련을 만드는 교육과정이었다.

그런데 기업이 이 업무를 AI로 대체하면 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문제는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할 때 생긴다. 신입사원의 일이 줄어들면 신입이 경험을 축적할 통로도 줄어든다. 경험이 있어야 고차원적인 판단과 AI 설계가 가능한데, 경험을 얻는 첫 입구부터 좁아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한국은행의 2026년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천 개 감소했고 이 가운데 26만8천 개,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다만 이를 곧바로 AI의 단독 인과효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후 채용 정상화, 경력직 중심 채용, 기업 내부교육 약화, 재택근무 확산 등 여러 변화가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이미 존재하던 경력직 선호와 초급업무 축소를 더 빠르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현상을 일자리 숫자만으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력 사다리’의 약화다. 과거에는 초급업무를 수행하고, 중간업무를 맡고, 경험을 축적해 고급 판단업무로 이동했다. 그런데 첫 단계가 AI로 빠르게 압축되면 사회 전체로는 장래의 숙련인력을 길러내는 통로가 좁아진다.

기업 하나만 보면 신입사원을 덜 뽑고 AI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면 5년 뒤, 10년 뒤에는 경험 있는 중간숙련자를 어디에서 공급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기업의 단기 생산성 선택이 국가의 장기 인적자본 문제로 바뀌는 지점이다.

여기에 베이비부머의 대규모 은퇴가 겹친다. 한쪽에서는 경험 많은 사람이 조직 밖으로 빠져나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경험을 쌓아야 할 청년이 조직 안으로 들어갈 통로가 좁아진다. 두 문제를 노인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라는 서로 다른 정책으로만 나누면 연결고리를 놓치게 된다.

해법은 세대교체보다 세대 연결에 가깝다. 베이비부머가 가진 현장 암묵지와 청년이 가진 AI 적응력을 실제 업무 안에서 결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실제 업무 하나를 놓고 고경력자와 청년이 함께 AI 기반으로 프로세스를 재설계할 수 있다. 고경력자는 어떤 단계가 중요한지, 어떤 예외가 반복되는지, 무엇을 자동화해서는 안 되는지, 현장에서 무엇을 최종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공한다. 청년은 AI 도구와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그 경험을 데이터와 업무흐름, 검색체계, 검증규칙, 실제 시스템으로 바꾼다.

이때 결과물이 단순한 교육 수료증이어서는 안 된다. 업무 프로세스 지도, 자동화 가능한 업무목록,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경계, 오류사례 데이터베이스, AI 결과 검증절차, 표준업무절차, 실제 작동하는 자동화 도구가 남아야 한다. 교육이 실제 생산체계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베이비부머의 역할도 달라진다. 과거의 일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암묵지를 AI 시대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도메인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청년 역시 단순히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지식을 디지털 프로세스로 바꾸는 AI 업무설계자가 될 수 있다.

이 모델은 특히 중소기업과 지역에서 중요하다. 별도의 AI 전환조직을 갖추기 어려운 기업은 기술만 사들인다고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 무엇을 바꿀 것인지 정의할 사람과 실제 자동화를 구현할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은퇴를 앞둔 산업별 고경력자와 청년을 실제 중소기업 프로젝트에 연결한다면 고령층 계속근로, 청년 경력형성, 기업 AI 전환을 하나의 사업 안에서 묶을 수 있다.

성과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교육인원과 수료증 수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후 업무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오류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청년이 6개월과 12개월 뒤에도 해당 직무에서 일하고 있는지, 고경력자의 암묵지 가운데 얼마나 조직지식으로 전환됐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야 ‘AI 교육사업’이 아니라 실제 노동시장 정책이 된다.

지역 문제도 같은 구조다. 한국은행의 2026년 9월 분석에서는 2023년 이후 증가한 생성형 AI 고노출 일자리 24만7천 명 가운데 80.8%가 수도권에서 증가했고, 2025년 에이전틱 AI 고노출 일자리 증가분의 수도권 비중은 88.3%였다. 반면 20대의 AI 고노출 일자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감소했다. 이는 AI가 고용변화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결과는 아니지만 전문성과 실무경험을 요구하는 일자리 증가가 이미 경험이 부족한 청년에게 어려운 진입조건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지역의 AI 정책도 교육생 숫자보다 경험을 만드는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 지역 대학, 퇴직 전문인력, 지역 중소기업을 연결해 기업의 실제 업무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청년이 업무경험과 포트폴리오를 얻도록 해야 한다. AI가 수도권의 고숙련자에게만 생산성 프리미엄을 주는 기술이 아니라 지역의 경험과 청년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되게 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두 개의 자산을 동시에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 하나는 은퇴하면서 조직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십 년의 현장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해 축적되지 못하는 청년의 미래 경험이다.

AI는 이 단절을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설계를 바꾸면 반대 역할도 할 수 있다. 고경력자의 암묵지를 구조화하고 청년이 그것을 AI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면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세대 사이의 지식을 연결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청년과 베이비부머 가운데 누가 AI를 더 잘 쓰는가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기술이 있지만 경험을 쌓을 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에게는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AI 시대의 경제적 가치로 전환할 통로가 부족하다. 기업에는 AI가 있지만 그 기술을 조직 전체의 생산성으로 바꿀 업무설계 능력이 부족하다.

세 문제는 사실 하나의 문제다.

청년에게는 AI 시대의 새로운 경력 사다리를 만들고, 베이비부머에게는 경험을 시스템으로 전환할 역할을 주며, 기업에는 두 세대가 함께 실제 업무를 재설계할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AI와 인간의 협업을 상생이라고 부르려면 바로 이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을 AI로부터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의 경험이 다음 사람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 AI를 끼워 넣는 새로운 노동시장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쪽에서는 30년의 경험을 퇴직과 함께 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30년 뒤 그 경험을 가져야 할 청년에게 첫 번째 3년조차 주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느냐 만드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제 이것이다. 우리는 AI를 이용해 사람의 일을 없앨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경험이 다음 세대의 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참고자료

필자 소개

이명훈은 법학을 전공했으며 인공지능 행위의 책임귀속과 법적 지위, 책임법 문제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해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논문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책임법과 인간·AI 협업, Agentic AI 및 다중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스템의 행위효과와 책임귀속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